근대는 르 꼬르뷔제, 미스 반 데어 로에와 같은 위대한 건축가를 낳았다.
철근과 유리는 중력을 거스르며 마치 떠 있는 듯한 미스의 수많은 파빌리온을 탄생시켰고
콘크리트는 수직적인 벽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형태와 공간을 만드는 꼬르뷔제의 건축적 시험들을 가능하게 했다.
효율성과 기능에만 충실했던 모더니즘 건축의 이면에는
새로운 재료로 인해 발현된 엄청난 건축적 가능성들을 탐구하려던 건축가들의 욕망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그 공간 안에 거주하는 인간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은 등한시 되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건축을 위한 건축'에 반기를 들며, 인간의 행태가 중심이 되는 건축을 지향하고자 했던
덴마크 건축가 얀겔은 1965년 그의 아내이자 심리학자였던 잉그리드 문트(Ingrid Mundt)와 함께
인간이 살기 좋은 환경을 연구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나게 되고,
덴마크로 돌아와 그 동안의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코펜하겐을 보행자 중심의 도시로 만들기 시작한다.
1971년 이탈리아와 코펜하겐에서의 모범사례 수집, 관찰, 연구 등을 'Life between buildings'로 엮어낸다.
학계에서 그 동안 연구했던 이론을 현실화 시키고,
적극적으로 도시 환경 개선 사업에 뛰어들고자 그의 제자였던 헬레 쇠홀트 (Helle Soholt)와 함께
Gehl Architects를 설립한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두 건물 사이의 아트리움에 놓이는 브릿지 사이의 적정한 간격을 조정하는데 필요한 사례를 찾아보며 알게 된 '얀 겔'의 연구는, 실무에서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치수'를 정당화시키기에 충분한 깊이와 합리성을 갖고 있었다. 인간의 시각이 교차되고 인지될 수 있는 적정한 거리의 범위를 알아보는 실험이었던
그의 저서 'Cities for people'의 한 꼭지 'Senses and scale'을 소개한다.
얀겔은 인간의 감각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치수사이의 관계성은 도시 계획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인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거리의 범위는 100m이고, 이 범위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움직임을 인지하고 실제적인 시각적/물질적 교류가 발생한다. 인간의 시각은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주로 아래로 향하고 건물의 5층 높이 이상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인지하지 못한다. 인간의 감각이 어떻게 주변 환경을 인지하는지를 알게 되고, 그 실제적인 치수값이 주어질 때
도시와 건축 설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베를린은 활기가 넘친다.
거리를 걷다보면 수많은 이벤트가 발생하고 쉽게 말해 볼거리가 많다.
레스토랑과 카페의 테이블들은 거리에 바로 면해 보행거리의 일부와 융화되고
그들의 행태는 도심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부가 된다.
도심 곳곳에 빽빽하게 심어진 가로수들의 친환경적 측면들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시시각각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여름이 되면 아이스크림 가게들은 거리를 향해 문을 열고
그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노는 아이들의 '놀이'는 거리의 풍경이 된다.
주말이면 한 블럭의 거리는 차량이 통제되어 벼룩시장이 열리고
보행자와 주민들을 위한 온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건축가로서 구현하고자 하는 언어를 창조하는 것도 중요지만,
언제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건축 안에서, 건축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사는 동네가, 내가 걷는 거리가 나의 삶이 되듯
그러한 인간다운 삶을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고 그 방향을 이끄는 책임은
도시와 건축 설계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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